흔들리는 나이는 지났는데
나이 드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날에는 조그만 일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잘 사는 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기에
모든 순간마다 흔들렸다.
내 삶을 지켜보며 그때그때 점수를 매겨주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으면 싶었다.
"잘했네" "이건 틀렸다"하며 동그라미나 별표를 그려주는 분이 있다면
나날이 얼마나 쉬워졌을까?
그런데 누가 그렇게 해주던가.
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라며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 경우 조직에 속하지 않는 직업이라 더더욱 그랬다.
교복을 벗고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으니 세상은 영 딴판이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으나
공연장의 지배인이나 웨이터 아저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늘 굳은 표정이었다.
무대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위협을 해도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잔뜩 긴장하여 방어기제로 똘똘 뭉쳐 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는 잘난 척한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늘 긴장된 상태인 데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나의 20대.
서른이 되고 싶었다.
서른이면 두 발을 땅에 딱 딛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흔들림은 여전했다.
하지만 10대나 20대와는 다르게,
나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세월만큼 버티고 선 느낌이랄까?
사십 대가 되니 두렵고 떨리게 했던 것들에 대한 겁이 조금 없어졌다.
더 이상 누가 나를 욕하거나 위협할 때 파르르 떠는 새가슴이 아니었다.
"왜, 뭐!" 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더 밟아대는구나.
한 번이라도 큰소리쳐야 건드리지 않는구나.'
혹독한 지난 시간 덕택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십 대가 되니 나와 다른 시선이나 기준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옳다'거나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누가 별난 짓을 해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노래에도 관객의 평이 모두 다르듯 정답이랄 게 없었다.
그러니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
육십 세를 넘기니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다.
그토록 원했던 안정감인데,
이런 감정이 좋으면서도 한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설렘과 울렁거림이 없이 침잠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니,
예전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일들이 한 뜸씩 느려졌다.
어느덧 칠십.
"나이 먹는 게 좋다. 너희도 나이 들어 봐봐. 젊음과 안 바꾼다" 했었는데
무심코 젊은 날의 내 사진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대체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많은 나날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갔구나!
- 그러라 그래: 양희은 에세이, 양희은 지음, 김영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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